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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고려국과 그 외 나머지.
2023-09-09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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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세상의 모든링크 링크모음 주소모음 링크짱!!</p>
<br><br>중서성(中書省)에서 보내온 자문(咨文)에 이르기를,<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맑은 고딕, Malgun Gothic, 새굴림, sans-serif; font-size: 15.6px;">“홍무 5년(1372) 10월 22일에 보내온 자문을 받았습니다. ‘배신(陪臣) 밀직사동지(密直司同知) 김서(金湑) 등을 보내 홍무 6년(1373) 신년 하례의 표문을 올리고 방물을 공헌합니다.’ 또 자문을 받았습니다. ‘배신 찬성사(贊成事) 강인유(姜仁裕) 등을 파견하여 감사의 표문을 올리고 방물과 마필을 공헌합니다.’ 그달 23일에는 예부관(禮部官)이 상주하고, 보내온 사신을 인도하여 봉천전(奉天殿)에서 알현하였습니다.<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맑은 고딕, Malgun Gothic, 새굴림, sans-serif; font-size: 15.6px;">삼가 성지(聖旨)를 받들기를, ‘고려국왕에게 앞서 사신을 파견하기를 너무 자주 하였더니 국왕이 영접하다가 더위까지 먹었다고 한다. 이에 한동안 사신을 파견하지 않았다. 근래에 연답리마실리(延答里麻失里)에게 명승(明昇) 등 가족을 데리고 가게 하였을 때 너희 중서성으로 하여금 이러한 뜻을 적어서 국왕에게 알려주게 하였다. 그는 도리어 매년 수차례 사람을 보내 금, 은, 기명(器血) 등 물건을 진상하니, 이러한 예물은 백성들을 수고롭고 번거롭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사신의 왕래에는 바다를 건너니 매우 어렵고 험난한 일이다. 또 최근에 홍사범(洪師範)은 돌아가는 길에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파손되고 그도 물에 빠져 죽었다. 다행이 몇 사람이 살아남아서 그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만일 모두 한꺼번에 죽었다면 어찌 논란이 없었겠는가.<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맑은 고딕, Malgun Gothic, 새굴림, sans-serif; font-size: 15.6px;">내 생각으로는 옛날부터 중국 제후(諸侯)들은 천자(天子)에게 매년 1번 소빙(小聘)하고, 3년에 1번 대빙(大聘)하며, 중국 본토 밖[九州] 번국(蕃國)과 원국(遠國)은 30년[每世]에 1번 조빙(朝聘)하고, 그들이 마치는 진상물도 예의를 바쳐 성의를 표하는 데 그쳤다. 지금 고려는 중국과 가깝게 위치해 있고, 문물(文物)과 예악(禮樂)이 서로 통하며, 경사(經史)가 중국과 서로 유사하니 다른 번국(蕃國)들과 다르니 3년에 한번 조빙하는 예에 따르게 하고, 또 원하면 한 세대에 한번 조빙해도 된다. 중서성(中書省)은 나의 이런 말을 문서로 써서 고려국왕에게 보내서 알게 하고 이후 가져오는 진상물은 단지 토산의 포 3~5짝[對]을 넘지 않게 해서 성의만 표하면 되고, 그 밖의 물품은 모두 가져오지 못하게 하라. 그 밖의 번국과 원국인 점성(占城)·안남(安南)·서양쇄리(西洋鎖里)·과왜(爪哇)·발니(勃泥)·삼불제(三佛齊)·섬라곡(暹羅斛)·진랍(眞臘) 등 새로 귀부한 나라들도 빈번히 사람을 보내오는데, 이는 또한 그곳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 나라의 사신이 올 때에도 그들에게 말해 옛사람들의 예에 따르도록 하라.”<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맑은 고딕, Malgun Gothic, 새굴림, sans-serif; font-size: 15.6px;">라고 하였다.<br>-고려사> 世家 卷第四十四>恭愍王 22年>7월>명 중서성에서 공물을 베로 국한할 것을 공문으로 알리다<br><br>○이에 앞서 황상이고려에서 공물을 헌상하러 오는 사자의 왕래가 빈번하다 하여 원나라 추밀사(樞密使) 연안답리(延安答里)를 파견하여고려를 효유하게 하고 또한 사라(紗羅)·문기(文綺)를 그 왕 왕전(王顓, 공민왕)에게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왕전이 그 나라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인유(姜仁裕)를 파견하여 표문을 올려 사은하고 말 17필과 금낭(錦囊)·궁시(弓矢)·금안(金鞍) 및 인삼 등의 물건을 바쳤다. 이때에 그 나라의 하정단사(賀正旦使) 김서(金湑) 등이 먼저 경사(京師)에 이르러 있었는데, 황상이 정단까지 기일이 아직 많이 남았으므로 그 사신들을 오래 머물러두게 하는 것을 우려하여 강인유가 연이어 도착하자 드디어 모두 환국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중서성(中書省) 신하에게 말하기를, “지난번에고려의 공헌이 빈번하다 하여 연안답리를 파견하여 가서 이 뜻으로 깨우치게 하였다. 지금 한 해 사이에 공헌이 여러 번 이르니 이미 그 백성들을 곤궁, 피폐하게 하고 있으며, 사자들이 바다를 건너오는데 도로가 험난하다. 홍사범(洪師範) 같은 자는 귀국 때에 배가 전복되어 익사하는 환란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다행히 살아남은 자가 있어 돌아가서 그 까닭을 이야기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의심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무릇 옛날에 제후(諸侯)는 천자(天子)에게 있어 매년 한 번 소빙(小聘)하고 3년에 한 번 대빙(大聘)하며, 구주(九州) 바깥의 번방(蕃邦)과 원국(遠國)은 오직 한 세대에 한 번만 조현할 뿐이었으며, 그 바치는 것도 또한 너무 사치스러운 물건은 없었다. 지금고려는중국과 가까이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경사(經史)를 알며문물과예악이 대략중국과 비슷하니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마땅히 3년에 한 번 빙(聘)하는 예를 따르게 해야 할 것이고, 혹 매년 한 번 올 수도 있을 것이며, 바치는 토산물은 다만 생산되는 포 10필이면 족할 것이니 너무 많지 않게 하도록 하라. 중서(中書)에서는 짐의 뜻으로 그들을 깨우쳐주라. 점성(占城)·안남(安南)·서양쇄리(西洋瑣里)·조와(爪哇)·발니(渤尼)·삼불제(三佛齊)·섬라곡(暹羅斛)·진랍(眞臘) 등의 새로 귀부한 먼 나라들로서 무릇 내조한 자들에게 또한 짐의 뜻을 명확히 알려주라.”라고 하였다. 중서성에서 사신이 돌아가므로 황상의 성지에 따라 자문(咨文)으로써 그 왕을 효유하였다. 또한 조서를 내려 왕전에게 약이(藥餌)를 하사하였다.<br>-中國史書 高麗·渤海遺民 記事>明實錄>『太祖高皇帝實錄』卷76>고려에 조공 횟수와 토산물의 양을 줄일 것을 명하다<br>○섬라곡국(暹羅斛國) 사신 사리발(沙里拔)이 내조하여 토산물을 바쳤다. … 중서예부(中書禮部)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새굴림, 굴림체; font-size: 17px; text-align: start;">“옛날에중국에서 제후(諸侯)는 천자(天子)에게 있어 매년 한 번 소빙(小聘)하고 3년에 한 번 대빙(大聘)하며, 구주(九州) 바깥의 번방(蕃邦)과 원국(遠國)은 오직 한 세대에 한 번만 조현할 뿐이었으며, 그 바치는 토산물도 성의와 공경을 표하는 데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고려는중국과 아주 가깝고문물과예악이 자못 갖추어져 있어 다른 번방(番邦)들과는 다르므로 이에 3년 1빙의 예를 따르도록 명하였으며, 저들이 만약 매 세대에 한 번만 조현할 것을 바란다면 또한 그 뜻을 따르게 해주었다. 그 밖의 먼 나라들, 예컨대 점성(占城)·안남(安南)·서양쇄리(西洋瑣里)·조와(爪哇)·발니(渤尼)·삼불제(三佛齊)·섬라곡(暹羅斛)·진랍(眞臘) 등의 새로 귀부한 나라들은 조공을 보내온 것이 이미 빈번하였으며 그 수고로움과 비용도 매우 컸을 것인데, 이는 짐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고전을 준용하여 시행하되 반드시 빈번하게 올 필요는 없다고 하라. 문서를 보내 여러 나라로 하여금 이를 알게 하라.”<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새굴림, 굴림체; font-size: 17px; text-align: start;">라고 하였다.<br><br>-中國史書 高麗·渤海遺民 記事>明實錄>『太祖高皇帝實錄』卷88>고려·점성·섬라곡국 등에 조공 기한을 정하다<br>올량합(兀良哈) 및 알도리(斡都里) 등이 내조(來朝)하였는데, 사관(舍館)에서 다투었다. 알도리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온 것은 존장을 놓고 다투려고 온 것이 아니다. 옛날에 시중(侍中)윤관(尹瓘)이 우리 땅을 평정하고, 비석을 세우기를, ‘고려지경(高麗地境)’이라 하였으니, 이제 경내의 인민들이 모두 제군사(諸軍事) 〈이성계〉의 위신(威信)을 사모하여 온 것뿐이다. 비록 제군사 집의 마구간 옆에 처하더라도 그가 후대한다고 감격할 것인데, 하물며 화려한 집에서 무슨 동서의 차이가 있겠는가? 다만 주상과 제군사를 빨리 뵙고 싶을 뿐이다.”라고 하고는 드디어 다투는 것을 그만두었다.<br><br>-고려사>권46>세가 권제46>공양왕(恭讓王) 4년>2월>오랑캐와 오도리가 다투었다가 화해하다<br>갑술일본국(日本國)승려현교(玄敎)가승려도본(道本) 등 40여 인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며칭신(稱臣)하며표문(表文)을 올려 말하기를,<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새굴림, 굴림체; font-size: 17px;">“하늘과 땅은 높으면서 넓기 때문에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 주며, 해와 달은 밝고 높이 비추기 때문에 만방을 환하게 해줍니다. 공자와 맹자는 인의(仁義)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풍속을 가르치고 배양할 수 있으니, 이 셋과 같은 것들은 고금에 그 공을 나란히 할 만한 것이 드뭅니다. 가만히 듣건대 고려국왕 전하는 덕이 천지를 뒤덮고 밝기가 일월보다 뛰어나며 도가 공맹을 초월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방의 오랑캐 국가들과 초목과 금수가 패연히 그 큰 은택을 입었으니, 전하와 그 공을 나란히 할 만 한 자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상서가 감응하여서 기린과 봉황이 길상을 바치고, 교외 풀숲에서 조화롭게 울고 있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현교는 멀리 태양 아래 〈일본〉 오랑캐 땅에 거하여 지극히 노둔하여 볼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멀리서 화봉(華封)이 천추만세만만세(千秋萬歲萬萬歲)를 아뢰는 듯이 하여 예의상 조금이나마 잘못으로부터 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br style="color: rgb(34, 34, 34); font-family: Nanum Gothic, 새굴림, 굴림체; font-size: 17px;">라고 하였다. 도본 등이 말하기를, “중국에서 일찍이 일본이칭신(稱臣)하지 않았기 때문에 꾸짖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답하기를, ‘천하란 것은 천하의 천하인데 어찌 한 사람의 천하겠는가.’라고 하며, 끝내칭신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대국(大國, 고려)에칭신하는 것은 의(義)를 사모해서입니다.”라고 하였다.<br>-고려사>권46>세가 권제46>공양왕(恭讓王) 3년>10월>일본국 승려 현교가 칭신하며 표문을 바치다<br><br>정해 김윤후(金允厚) 등이유구국(琉球國)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또 그 신하 옥지(玉之) 등을 보내서 신하를 칭하는표문을 올리고 포로로 잡힌 우리나라 사람 37명을 돌려보내며 이어 토산물을 바쳤다.<br>-고려사>권45>세가 권제45>공양왕(恭讓王) 2년>8월>유구국 중산왕이 칭신하는 표문을 올리다<br><br>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옥을 보내어표문을 바치며 신하를 칭하고, 왜구에게 사로잡인 우리 인구를 돌려보냈으며 방물인 유황 300근, 소목(蘇木) 600근, 후추 300근, 갑(甲) 20부를 바쳤다. 처음에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가 보고하기를, “유구국왕이 우리나라가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순천부(順天府)에 도달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도당(都堂)에서 전대(前代)에 온 적이 없다 하여 그 접대하는 것을 어려워하였는데, 창왕이 이르기를, “멀리서 사람이 공물을 가지고 왔으니, 박하게 대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서울로 들어오게 하여 위무하여 보내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 전 판사(判事) 진의귀(陳義貴)를 영접사(迎接使)로 삼았다.<br><br>-고려사>권137>열전 권제50>창왕(昌王) 원년>8월>유구국 중산왕이 칭신하며 예물을 보내다<br>무자섬라곡국(暹羅斛國)에서 내공(奈工) 등 8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며 글을 올려 이르기를, “섬라곡국왕이 이번에 내공 등을 사신으로 삼아서 배에 토산물을 싣고 가서 고려국왕(高麗國王)에게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성명과 봉한 표식이 없이 작고 동그란 도장만 있어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나라에서 그것이 위조일까 의심하여 의논하기를, “믿을 만하지 않으나, 또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또한 오는 사람들은 거부하지 않고 후대하는 것이니, 멀리서 온 사람들을 예로써 대하되 그 글은 받지 않아서 의혹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들을〉 인견하여 노고를 치하하니, 대답하기를, “무진년(1388)에 명을 받고 배를 띄워, 일본에 이르러 1년을 머물렀는데, 오늘에서야 귀국에 이르러 전하를 보게 되니, 행역(行役)의 괴로움을 바로 잊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뱃길의 여정과 원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북풍이 불면 40일이면 올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사람들이 어떤 이들은 웃통을 벗었고 어떤 이들은 맨발이었는데, 높은 사람은 흰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싸맸고, 그 복종(僕從)은 존장(尊長)을 보면 옷을 벗어 몸을 드러냈는데, 세 번 통역을 거쳐야 그 뜻을 알 수 있었다.<br>-고려사>권46>세가 권제46>공양왕(恭讓王) 3년>7월>섬라곡국에서 토물을 바치다<br><br>○섬라곡국(暹羅斛國)에서 사신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헌상하였다.<br>-고려사절요>고려사절요 권35>공양왕2(恭讓王二)>공양왕(恭讓王) 3년>7월>섬라곡국에서 방물을 헌상하다<br>이는 보시다시피, 중국의 명나라 태조 곧 건국자인 주원장이 모든 나라들이 명나라에 입조하는데, 이 경우, 고려국만이 중국의 명나라와 거리가 가깝고, 또, 문물과 예악, 경서가 중국과 유사하므로, 다른 나라들과 다르며, 그 외 나머지 나라들 뒤에 각국 국호를 언급하는 것을 알 수 있죠. 즉, 명나라 조정에서는 고려국과 그 외 나머지 이렇게 천하를 보았음을 알 수 있지요. 더 나아가, 당연히 이에 비례해서, 만주대륙의 모든 여진족, 일본국(왜국), 유구국(류큐국, 현 오키나와), 섬라곡국(태국의 아유타야 왕조)가 고려국에 입조해 고려국을 상국, 대국, 황제국 등으로 섬겨왔음을 알 수 있지요. 사실 이건 후대 조선국 포함 우리 한국문명의 변함없는 대대로 이어져온 국제적 위상이기도 했지만 말이지요. 흥미로우니만큼, 유익한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ㅎ <img src="/data/daumeditor10/230904/73638216938320700.jpg"><img src="/data/daumeditor10/230904/7363821693832070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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